어린 우리 아이들에게 벌써 ‘합격’과 ‘불합격’ 경험이 필요할까요
요즘 유아를 대상으로 한 레벨테스트가 곧 금지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오히려 시행 전에 미리 테스트를 받게 하는 학원들이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실제로 10월 1일부터는 학원에서 유아를 모집하거나 수준별로 배정하기 위한 시험이나 평가가 금지되어,
‘4세 고시’, ‘7세 고시’와 같은 지나친 조기 선발 경쟁을 줄이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식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반가운 일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금 복잡해집니다.
아직 어린 아이인데 벌써 여러 곳의 테스트를 받으러 다니고,
어떤 곳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고, 합격과 불합격 소식을 듣게 됩니다.
“우리 아이는 00에 붙었어요.”
“거기는 테스트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대요.”
“몇 명 뽑는데 우리 아이가 뽑혔어요.”
부모에게는 뿌듯한 일일 수 있습니다.
아이는 처음에 그 뿌듯함이라는 것을 부모의 표정으로 배웁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내가 합격했을 때 엄마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잘하는 아이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친구는 붙었는데 아이 자신은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직 실패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나는 못했나 보다’라는 느낌부터 경험하게 됩니다.
다섯 살 정도의 아이들에게 벌써 합격과 불합격 경험이 필요할까요.
저는 검사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발달과 심리를 공부하고 오랫동안 아이들을 평가하고 상담해 온 사람으로서,
어떤 검사는 아이에 대한 많은 정보를 주기 때문입니다.
검사를 통해 아이의 언어 능력을 볼 수 있고,
시공간 능력이나 기억, 처리 속도, 정서 상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무엇을 잘하는지 뿐만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 조금 더 도움이 필요한지도 알 수 있지요.
문제는 테스트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를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는가입니다.
테스트의 목적이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이해하는 것’에서
‘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얼마나 앞서 있는지를 판정하는 것’으로 변질된 것이 문제입니다.
이렇게 되면 검사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특히 염려되는 것은
지금 이 한 번의 결과로
아이에게 자기 능력의 한계처럼 받아들여지게 되는 경우입니다 .
유아는 성인과는 달라서 앞으로 꺼내 쓸 수 있는 자원이 가장 풍부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언어능력이나 기억력, 집중력으로
마치 그 아이가 앞으로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의 전부로 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경험과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고,
누구를 만나 어떻게 배우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이 어린 시기에,
너무 일찍 “너는 됐어”, “너는 안 됐어”라는 경험을 갖게 된다면,
아이에게는 단순히 한 시험에서 떨어졌다는 경험으로 끝나지 않고,
“나는 이런 걸 잘 못하나 봐.”,
“나는 저 친구보다 못하나 봐.”,
“나는 원래 잘하는 아이가 아닌가 봐." 라는 식으로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좁혀 받아들이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라고 해서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이 아니고,
4~5세 유아들도 이미 언어, 수학, 또래관계 등 서로 다른 영역에서
자신을 다르게 평가할 수 있는 자기개념을 형성하기 시작하는데다,
4~5세 아이들도 다른 아이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고,
자신이 상대적으로 잘하지 못했다고 느끼면,
이후의 어떤 활동도 하고 싶어 하지 않게 되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에게 주어지는
‘되었다!(합격)’과 ‘안되었다(불합격)’이라는 말의 무게와 어른들의 표정 등은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무겁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다섯 살에 어떤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했다고 해서
여섯 살, 일곱 살의 그 아이도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반대로 지금 어떤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해서
그 아이가 성장한 후에도 같은 모습이 될 것이라고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습니다.
제 아이를 키워보고,
상담하고 교육하면서 여러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쭉 지켜본
제 경험상,
지금 말을 천천히 하는 아이가
몇 년 뒤 누구보다 표현력이 뛰어난 아이가 되어있기도 하고,
낯선 자리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던 아이가
익숙한 환경에서는 놀라운 사고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어떤 과제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이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을 만났을 때는 몇 시간씩 몰입하기도 합니다.
아이에게는 아직 열리지 않은 문이 많습니다.
하지만 부모가 너무 일찍 몇 개의 문만 열어보고
“이 아이는 여기까지인가 보다”라고 판단해 버리면,
정작 아이가 자기 힘으로 열어볼 수 있었던 다른 문까지 닫아버리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존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존감은 단순히 “나는 최고야”라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하는 것과 아직 잘하지 못하는 것을 함께 받아들이면서도,
그래도 나는 다시 해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결과에 따라 인정받는 경험이 반복되면
아이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보다
‘이번에 내가 통과했는가’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게 됩니다.
합격했을 때만 자신을 괜찮은 아이로 느끼고,
떨어졌을 때는 자신 전체가 부족한 것처럼 느낀다면
우리가 아이에게 길러주고 싶은 건강한 자존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지요.
자존감은
아이가 세상을 살아가며 실패를 견디고, 다시 도전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게 하는 마음의 힘입니다.
이러한 자존감은 ‘나는 해낼 수 있다’는 자기효능감과 연결되고,
어려움이나 실패를 경험한 뒤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탄력성의 바탕이 되기도 하며,
새로운 과제 앞에서 쉽게 포기하기보다 한 번 더 시도해보려는 도전에도 영향을 줍니다.
결국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늘 성공하는 경험이 아니라,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가치가 흔들리지 않고
다시 해볼 수 있다는 믿음을 쌓아가는 경험일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 일찍 아이들을
‘잘하는 아이’와 ‘못하는 아이’,
‘합격한 아이’와 ‘떨어진 아이’로 나누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다른 것을 배우게 됩니다.
배우는 즐거움보다 비교하는 법을 먼저 배우게 되지요.
“친구보다 내가 잘했어!”
처음에는 자신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자신감과 우월감은 다릅니다.
건강한 자신감은 ‘나는 해볼 수 있어’라는 마음이지만,
우월감은 ‘나는 다른 아이보다 잘해’라는 비교 위에 만들어지고,
이러한 비교를 통해 만들어진 자기평가는
비교 대상이 바뀌는 순간 계속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런 우월감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아무리 성공했다 하더라도
자기밖에 모르거나,
늘 불안하고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을
상담현장에서는 많이 보게 됩니다.
우리의 속담에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낫다”는 말이 있지요.
교육심리학에는 이와 흥미롭게 연결되는 ‘Big-Fish-Little-Pond Effect’라는 게 있습니다.
비슷한 능력을 가진 학생이라도
자신보다 뛰어난 학생이 많은 집단에 들어가면 학업적 자아개념이 낮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아이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개인의 능력 자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또래와의 비교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도 형성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언제나 자신보다 쉬운 환경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적절한 수준의 도전은 아이에게 필요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수준보다 지나치게 쉬운 교육만 계속 받게 되면
아이 역시 지루해지고 학습 동기를 잃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선행의 속도가 아니라 도전의 수준입니다.
저희 강남원의 교육철학인 근접발달영역(ZPD)의 관점에서도,
좋은 교육은 아이가 이미 혼자 할 수 있는 것만 반복시키는 것도 아니고,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을 밀어붙이는 것도 아니며,
지금의 능력에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적절한 도움과 도전을 제공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글자를 몇 학년 수준까지 읽는지,
연산을 몇 학년 과정까지 끝냈는지를 확인하는 것보다,
이 아이의 사고가 어디까지 뻗어갈 수 있는지,
그곳에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
이러한 것들이 유아기에 중요한 어른의 역할입니다.
한 가지 질문에서 또 다른 질문을 만들어내는지,
배운 것을 다른 상황에 연결할 수 있는지,
잘되지 않을 때에도 다시 시도하는지,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이런 모습들은 점수 하나만으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문제지 한 장을 더 많이 풀게 할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언어적 사고가 뛰어난 아이에게는더 많은 질문과 토론의 기회를 주고,
공간적 사고가 뛰어난 아이에게는 블록, 그림, 구조물, 체스와 같은 활동을 통해 사고를 확장시키며,
에너지가 많고 신체 활동에 잘 집중하는 아이에게는
움직임 속에서 자기조절과 전략을 그에 맞는 스포츠를 통해서 더 키워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인지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정서적으로 예민한 아이라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실패와 좌절을 견디는 경험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아이의 능력, 혹은 영재성을 발견한다는 것은
아이가 가진 그 능력이나 영재성에 이름표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잘 찾아 그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정말 필요한 것은
‘나는 몇 등인가’를 아는 경험이 아니라,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
‘잘되지 않아도 다시 해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경험입니다.
영재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에게 너무 일찍 “너는 영재야”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건강한 자존감 속에서 그 아이 안에 있는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검사나 평가, 때로는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선발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유아기만큼은 그 목적이
아이에게
“너는 이 정도의 아이야”라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어른에게
“그렇다면 이 아이에게 지금 어떤 환경을 제공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어린 아이들에게 벌써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치기보다는,
그 아이가 무엇에 눈을 반짝이는지를 먼저 보고 싶어해야 합니다.
아직은 판별로 결론내리기 보다는,
발견을 통해 최적의 것을 제공해주는 것이 먼저인
어린 나이이기 때문입니다.